[기획] 땅과 하늘을 우러르며 느리게 사는 삶

자연생태, 전통문화 어우러진 예산군 ‘슬로시티대흥’

정규성 정은지 기자 | 기사입력 2019/03/18 [15:31]

[기획] 땅과 하늘을 우러르며 느리게 사는 삶

자연생태, 전통문화 어우러진 예산군 ‘슬로시티대흥’

정규성 정은지 기자 | 입력 : 2019/03/18 [15:31]

 

▲ 자연생태, 전통문화 어우러진 예산군 '슬로시티대흥' © 시사뉴스24

 

[예산=시사뉴스24] 정규성 정은지 기자 = 예산군에는 아주 특별한 마을이 있다. 풍요로운 자연생태를 보존하고 고유한 전통문화를 품고 있으며, 지역주민들의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슬로시티대흥이다.

 

슬로시티(slowcity)1999년 이탈리아 몇몇 도시의 시장들이 모여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의 위협으로부터 달콤한 인생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슬로시티는 느리게 먹기느리게 살기운동으로 시작됐다. 이 운동은 성장만을 추구해온 현대의 가치를 성숙으로, 자본주의 시대에 넘쳐나는 삶의 양삶의 질로 변화시켰다. 단순히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의 속도를 느림 숭배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빠름과 느림, 농촌과 도시, 로컬과 글로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조화로운 삶의 리듬을 지키는 것이 슬로시티이다.

 

1999국제슬로시티운동이 출범된 이래 27개국 174개 도시로 확대됐으며, 한국에도 10개의 슬로시티가 가입돼 있다. 예산군 대흥면은 지난 2009년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국제슬로시티연맹에 가입했다. 이곳은 생태적으로 우수하고 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곳이다. 가족애와 형제애의 상징으로 대표적인 의좋은 형제가 실존했던 곳이고, 백제 부흥의 거점지인 봉수산의 옛 성터 임존성이 남아있다. 봉수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을에는 수백 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옛 골목길, 돌담길이 잘 보존돼 있다.

 

마을 앞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예당저수지가 펼쳐져 있다. 38종 이상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는 이 저수지는 전국 낚시꾼들의 성지이자 청정 자연환경을 대표하는 곳이다. 저수지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생태공원이 조성됐으며, 예산의 특산물인 예당 붕어찜민물어죽등의 슬로푸드를 탄생시켰다. 껍질째 먹는 황토밭 예산사과도 빼놓을 수 없는 지역 특산물이다.

 

느린 걸음으로 만나는 슬로시티

 

슬로시티대흥을 방문하면 시간을 20~30년 되돌린 듯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봉수산아래로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은 슬로시티대흥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에는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예당저수지가 펼쳐지고, 입구에는 그 유명한 의좋은 형제 공원이 제일 먼저 반긴다. 공원은 조선 세종 때 실존인물인 이성만’, ‘이순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좋은 형제 공원을 지나 대흥초등학교 쪽으로 100여 미터를 걸으면 슬로시티대흥 방문자센터를 만난다. 슬로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친환경 소재로 지어진 아름답고 소박한 단층 건물이다. 이곳에서는 방문자를 위해 느린꼬부랑길지도 등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0여명의 해설사가 방문객을 위한 자세한 설명도 곁들인다.

 

지난 2011년 조성된 느린꼬부랑길걷기는 슬로시티대흥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다. 3개의 코스로 구성된 느린꼬부랑길은 각 코스마다 대흥의 삶과 자연,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옛이야기길’, ‘느림길’, ‘사랑길로 명명된 시골길을 걷다보면 느리게 사는 삶의 의미를 저절로 깨닫고, 자연이 주는 건강한 기운을 담아갈 수 있다.

 

1코스인 옛이야기길은 방문자센터를 출발해 임존성 등산로를 따라 봉수산 중턱으로 이어진다. 예당저수지와 정겨운 다랑논, 울창한 숲길을 따라 대흥의 역사자원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봉수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봉수산 중턱에 다다르면 숲길 사이로 마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좋은 전망위치가 있다. 이곳을 지나 애기폭포로 향하면 마을로 흘러드는 실개천을 만난다. 따뜻한 봄날이면 화사한 벚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2코스 느림길은 물길과 숲길을 따라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천천히 걷다 냇가에 발도 담그고 큰 나무아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해도 좋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길을 벗어나 완만한 내리막을 걸어 내려오면 동서리와 교촌리의 너른 들판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마을로 진입하면 대흥향교가 보이고 수령 60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발길을 잡는다. 은행나무 원줄기 중앙에는 느티나무가 뿌리를 내려 두 나무가 공생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3코스는 사랑길이다. 교촌리 들녘 논두렁을 따라 걷다보면 시골마을의 포근함을 오롯이 느끼게 된다. 일소에게 물을 먹이던 소샘을 지나 삼신당 터에서 소원을 빌고 가족·연인과 함께 사랑의 이야기를 속삭여보는 것도 좋다. 사랑길의 종점 원두막에 오르면 사방으로 대흥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느림에서 사랑을 가꾸는 사람들

 

느린꼬부랑길이 슬로시티대흥의 자연과 역사, 농촌의 삶을 보여줬다면 최근 조성되고 있는 손바닥정원길은 마을 사람들의 예쁜 마음을 들여다보는 특별한 여행길이다. 오랜 세월 대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당에 꾸며놓은 작은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예쁜 할머니 뜨락’, ‘손 순경네 정원’, ‘미영엄니의 꽃밭’, ‘샘물 연산홍 꽃밭처럼 이름도 정겹다.

 

마을 안 좁은 길을 걷다보면 귀여운 달팽이가 그려진 팻말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팻말이 달린 집 마당이 바로 손바닥정원이다. 마을 사람들은 꽃이 지면 콩을 심고, 콩을 수확하면 꽃을 심는다. 밭과 꽃밭이 구분되지 않는 소박하고 작은 정원이다. 군데군데 가위손을 가진 주인장이 가꿔놓은 멋진 정원도 구경할 수 있다.

 

마을 구석구석을 걷다보면 몇몇 공방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사람들은 공방에서 잔통 짚공예품, 손바느질 제품, 천연 수제비누, 천연염색 등의 공예품을 천천히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다. 몇 해 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수공예품을 만드는 마을 협동조합 느린손을 탄생시켰다. 이들이 만든 수공예품은 마을 입구 주차장 옆 작은 상점에서 감상하고 구입할 수 있다.

 

예산대흥슬로시티협의회 관계자는 슬로시티운동이 벌어지기 전에는 마을발전이란 도시화로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슬로시티 지정 후 마을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들이 스스로 깨우쳤다. 방문객들이 찾아와 마을길을 걷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주민들이 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여행은 역사적 유물이나 사적, 아름다운 풍경에만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시골마을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올 봄 슬로시티대흥을 방문해 또 다른 여행의 참 맛을 느끼길 권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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